[BOOK]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일부러 어떠한 배경 지식도 찾아보지 않고 책을 들었다. 배경 지식을 통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무지를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감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우스트를 무지 속에서 읽기 시작한 건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여러 역자의 번역을 비교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래는 문학동네와 열린책들에서 동일한 부분을 발췌해왔다. 분명 같은 대사인데 역자에 따라 머리속에 그려지는 캐릭터가 다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또 다른 역자는 어떻게 캐릭터를 그려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난 후세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싶지 않소이다. 내가 후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가정한다면, 대체 지금 이 세상에는 누가 익살을 부려주지요?”
문학동네 - 이인웅 역
“나는 후세 이야길랑 듣고싶지 않아요. 내가 후세에 대해 말해봐요, 그러면 누가 현세 사람들을 즐겁게해주겠어요?”
열린책들 - 김인순 역
전체적인 줄거리는 파우스트라는 학자에게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가 접근하여 유혹으로 끌어들이면서 시험하는 내용이다. 파우스트는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악마의 속삭임에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생을 걸고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한다.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진리에 대해 찾아가는 여정을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오판이다. 물론 주인공 파우스트가 진리에 대해 갈망하고 고민하기는 하지만 본문의 큰 부분은 사랑이야기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야기’라고 해서 연애소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괴테가 생각하는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는 사랑이 아닌가? 싶은 이야기였다. 물론 그 중에 여러가지 우여곡절과 깨달음이 있고, 끝에 소소한 반전이 있지만.
이 책의 묘미는 전체적인 줄거리도 그렇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대사를 포함한 여러 캐릭터의 대사에 있다. 오래전에 쓰였음에도, 지금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읽어도 크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가는 문장들이 많다.
“자네들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도 근본적으로는 여러 현자들의 정신으로서
그 속에 여러 시대가 반영되고 있는 걸세”
위 대사에 답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지금의 시대 정신 또한 과거에서 부터 쌓여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전을 읽고서 공감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괴테의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이 존경스럽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때랑 지금이랑 이렇게 똑같다고? 이정도면 작금의 문제들은 현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가진 결함 아니야?’ 생각할 정도였다.
한 번쯤은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쉽게 읽혀지지는 않으니,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조금 부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