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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읽고 '파우스트 엔딩' 보기

heeble 2023. 9. 13. 01:08

파우스트 엔딩 포스터 [출처 : 국립극단 홈페이지]

 

'순간아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
죽음은 망각한 채로 더 많은 것을 욕심내고, 파괴하고, 욕망하는 것.
그리하여 결국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이며 파우스트이다.

인류의 역사, 철학, 종교 등을 대변하는 깊이를 보여주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파우스트 엔딩>으로 태어난다. 조광화 연출의 환상적인 세계관이 무대 위에 펼쳐지고, 여기에 캐스티안으로도 화제가 된 배우 김성녀가 새로운 파우스트를 선보인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이 시대의 파우스트가 전하는 새로운 결말을 기대하라!

인간 스스로 만든 종말의 상황. 지식에 한계를 느낀 인간 파우스트와 그녀의 영혼을 노리는 악마 메피스토가 내기를 시작한다. 끝없는 이상을 따라가는 인간과 그런 그녀를 파멸시켜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악마. 상반된 두 세계의 여정을 따라가가 보면 어느새 그들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가.

[출처 : 국립극단 홈페이지 '파우스트 엔딩' 공연소개]

 

별점 : ★★★★☆


  하릴없이 인터파크 티켓을 돌아다니다가 '파우스트 엔딩'을 보고 국립극단 홈페이지까지 흘러 들어갔다. 어라? 파우스트를 여자 배우가 연기하네? 당연히 남자 배우가 파우스트를 연기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뜻밖의 화보 이미지에 호기심이 생겼다. 뭔가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감은 덤. 거기에 작품소개를 읽으며 내 기대감은 또 한층 높아졌다.

   원작 파우스트를 읽었을 때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구원'에 관한 부분이었다. 앞에 있는 많은 에피소드는 차치하고서라도, 결말이 도저히 수긍이 안 가서 '고전을 현대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문했다. 그런데 이 연극을 관통하는 것이 '구원'이라니? 이건 봐야만 했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먼저, 성별을 달리하여 해석한 '파우스트'가 극에 새로움을 더했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인 파우스트의 성별을 달리한다는 것은 연출가나 배우, 극단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분명 어색해지는 부분이 존재했을 것이며, 어디까지 각색하고 어디까지는 원작을 차용할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됐을 것 같다. 그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새로움이라는 효과성은 가져오면서도 과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대의 문제를 고전에 녹여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경계를 잘 넘나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종교나 사회적 통념을 수긍하는 정도에 따라 새롭게 해석한 부분은 호불호가 좀 갈릴 것으로 느껴진다.

   두 번째는 현대적인 대사이다. 원작은 아무래도 고전 연극적인 대사 풍이 두드러지는데, 그런 부분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면서 현대적인 대사들을 넣어 조금 더 친숙하게 극을 만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 깊었다. 메피스토가 내뱉는 촌철살인의 대사들은 현대적인 어투를 담고 있어서 익숙하게 다가왔다. 또, 이 시국(코로나 19)에 따른 대사들도 있었는데, 우리가 팬더믹이라는 재앙적인 질병을 겪었기 때문에 연극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 극이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연기됐었다고 들었는데, 그사이에 이러한 시국을 대사에 잘 반영한 덕분에 극이 조금 더 흥미로워질 수 있었던 점이 아이러니하다.

   세 번째는 극의 분위기이다. 사실 원작을 읽을 때는 분명히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비극적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메피스토의 대사나 언행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에 비해 가볍게 다가왔고,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이 한 장면에 함께 나오면서 글의 분위기가 떠들썩하게 느껴졌으며, 대사를 주고받는 형태가 호흡이 빨랐기 때문에 덩달아 나까지도 경쾌한 리듬으로 책을 읽었다. 그런데 '파우스트 엔딩'은 원작보다는 훨씬 파괴적이고, 음울하며, 일견 두렵기까지 하다. 상상으로 만들어 냈던 '검은 개'나 '호문쿨루스'를 훨씬 더 극적으로 표현했으며, 조명의 사용이나 극 중에 나오는 음악들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둡고 음울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좋아요'를 드리고 싶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을 물론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에 김성녀 배우님께서 솔로로 극을 이끌어 가는 장면이다. 파우스트가 느낄 법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 순간 울컥하기까지 했다. 그래, 이거지. '파우스트 엔딩'은 납득가지 않던 원작의 결말에 답답해하던 내 속을 긁어주었다. (나중에 읽게 된 프로그램 북에서 조광화 연출가께서 어떤 생각과 어떤 의도로 극을 각색했는지에 관한 인터뷰가 있는데, 읽어보니 원작을 보시면서 내가 느끼던 것들을 똑같이 느끼셨던 것 같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극의 흐름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공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극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려 순간순간 극에서 현실로 강제소환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은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다음에 또 상영하게 될 때는 조금 보완되면 좋을 듯하다. 극이 조금만 더 다듬어진다면 다음 재공연에서 다시 한번 '파우스트 엔딩'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