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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heeble 2023. 9. 13. 00:58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별점

★★★☆☆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증거가 부족함에도 논리가 타당해서 납득이 간다.


일본이 총을 거부하고 중국이 해양 선박을 포기했던 일은,
고립 또는 반고립 상태인 사회의 기술 퇴행 현상을 보여주는 유명한 역사적 사례다.

총, 균, 쇠 中

총, 균, 쇠가 아니다. 환경, 식량, 사람이다.

 

인류 문명의 불평등이 시작된 ‘직접적’인 원인은 총, 균, 쇠로 보인다. 구세계의 사람들이 신세계의 사람들을 밀어낼 수 있었던 직접적인 도구가 바로 총이고, 균이며, 쇠였다. 그러나 바로 그 도구의 불평등을 가져온 간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인류가 시작할 때부터 존재했던 환경의 불균등이며, 이로 인한 식량과 인구 규모의 불균등이다. 자연환경의 혜택으로 구세계의 인구는 신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고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이는 고도화/복잡화된 정치 체계를 동반했다. 선순환으로 발달된 정치체계는 더욱 거대한 인구 규모에 질서를 줄 수 있게 했다. 결국 환경의 불균등이 지배와 피지배 인류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자연환경의 불균등은 주로 척박한 기후, 인간이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극복하기 어려운 지형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초기에 독립적으로 생산된 식량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내는 장벽이 되었고, 이 때문에 환경적으로 고립된 인류는 식량과 인구의 폭발이라는 ‘정복’의 필요조건을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우연히’ 척박한 환경 속에 태어나 ‘필연적’으로 피지배 계층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환경이 이 모든 불평등을 야기한 단일 변수일까? 일본보다 훨씬 앞서 문명과 기술이 발전했던 중국은 왜 최근까지 가난한 나라로 대표되고 있었으며, 동아시아에서 왜구로 통칭되던 일본은 어째서 중국보다 먼저 세계의 정상 국가 중 하나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결국 필연적 이어 보이는 결과들에 사실은 우연과 가능성(확률)이 섞여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먼저 우연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개화기에 일본을 보면, 서양 열강의 총과 문물을 접하고 빠르고 급진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반면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으며 그 대가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야 했다. 왜 일본의 지도부는 서양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으며, 중국의 지도부는 서양의 문물에 호의적이지 않았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일본의 지도부가 보수적이고, 중국의 지도부가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면? 그러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면 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즉, 우연히 적절한 시기에 우연히 적절한 지도부가 우연히 적절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벤트가 역사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은 아닐까?

 

유사한 맥락에서, 근현대를 통틀어 중국은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일본, 심지어 한국보다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빠르게 고도화된 정치 체계와 인구의 압도적인 수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결국 결과는 ‘확률’의 게임이 아닐까? 사람이 많으면 그중 뛰어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10명 중에 똑똑한 1명은 없을 수도 있지만 10,000명 중에 똑똑한 1명이 없긴 힘든 것이다. 하지만 ‘확률’의 게임이기 때문에 우연히 일본의 10명 중에 뛰어난 1명이 역사를 바꿔버린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자명한 근본 원인은 환경이다. 농작물이 살기가 어렵고, 인류조차 살기가 어려운 환경은 그 어떤 확률과 우연이 겹쳐도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고 그럭저럭 발전 가능한 환경이라면, 즉 환경이라는 필요조건을 충족한 뒤에는 누가 ‘충분조건’을 먼저 획득하느냐는 시간 싸움이 아니라, 확률과 가능성의 싸움인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다. 총, 균, 쇠로 정복과 지배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렸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수제를 신청한 이유 중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것이 이 책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논리에 크게 반감은 들지 않았다. 충분히 자연스러운 추론이며,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들이었다. 다만, 이 책을 다 읽어도 여전히 의문은 존재했다. 저자의 논리는 알겠는데, 그러면 유라시아에서 출발한 식량과 기술의 흐름이 빠르게 닿기 어려운 위치에 있고 실제로도 발전이 늦었던 일본은 어째서 중국보다 먼저 선진국에 도달했을까? 이것은 결국 사람의 차이인데, 이런 사람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초기의 발전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필연적인 형태이지만, 결국 그 발전은 한계선을 가질 수밖에 없고 특정 시점이 지나 두 문명의 차이가 줄어들 즈음에는 환경보다 확률에 의해 변동이 큰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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